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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석의 뿌리를 찾아서 2편]이젠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은, 이민지

Date : 2024-03-15 Posted by : 사단법인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 Rate : 0points Recommend : Recomm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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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10번째 우승트로피였다.

 

부모님 나라 한국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선 호주 교포 이민지(27)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승리를 확정지은 뒤 그는 호주 동료 선수 한나 그린이 건넨 샴페인을 마시며 활짝 웃었다.

10월 22일 경기도 파주 서원밸리 컨트리클럽 서원힐스 코스(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BMW 레이디스챔피언십.

이민지는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최종 합계 16언더파 272타를 기록해 한국계 교포 선수 앨리슨 리(28·미국)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첫 홀인 18번 홀(파4)에서 버디를 낚아 승부를 갈랐다.  

이로써 이민지는 2015년 LPGA투어 데뷔 후 신인 시절 킹스밀 챔피언십에서 첫 승을 신고한 뒤 8년 만에 통산 10승 고지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33만 달러(약 4억4400만 원). 세계 랭킹은 7위에서 4위로 점프했다.

호주 여자골프 선수 가운데 LPGA투어 10승 이상을 달성한 사례는 캐리 웹과 얀 스티븐슨에 이어 이민지가 세 번째다.

“한국은 제가 항상 가장 우승하고 싶었던 곳입니다. 또한 제 부모님의 뿌리가 한국에 있기 때문에 더 특별합니다. 연장전을 하러 가는데 가족 친지들이 모여 있는 걸 보니 신기하고 특별했고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LPGA투어 통산 10승의 기록이어서 조금 더 금상첨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호주로 이민을 간 부모님을 둔 이민지는 엄마 아빠의 모국에서 챔피언에 처음 오른 남다른 소감을 밝혔다. 이민지는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여러 차례 출전했지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한 채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고개를 숙였다. 9월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골프클럽에서 열린 KLPGA투어이면서 아시아골프리더스포럼(AGLF)이 주관하는 레이디스아시안투어(LAT)를 겸한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서는 연장전 끝에 패했다. 2021년 같은 대회에서도 연장 패배의 쓰라린 기억을 남겼다.

이민지는 골프 가족으로 유명하다. 어머니 이성민 씨는 한국에서 프로골퍼 지망생으로 골프 교습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 이수남 씨는 한국에서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 1996년 호주 이민 후 골프에 입문했는데 클럽 챔피언을 차지할 만큼 고수 실력을 갖췄다. 

이런 영향으로 10세 때 골프를 시작한 주니어 시절 아마추어 최고 강자로 이름을 날렸다. 2012년 아마추어 최고 권위를 지닌 US 걸스 아마추어 챔피언십 결승에서 앨리슨 리를 꺾고 우승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4년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앨리슨 리와 공동 수석으로 통과했다. 그가 LPGA투어에 뛰어든 2015년에는 뛰어난 루키가 즐비했다. 이민지, 앨리슨 리를 비롯해 김효주, 김세영, 장하나,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등이 ‘15학번’이다. 이들은 LPGA투어 세대교체를 주도하며 황금세대로 불렸지만 20대 후반에 접어든 요즘 그나마 이민지와 김효주가 명맥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이민지는 LPGA투어에서 사상 두 번째 파4 홀인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6년 KIA클래식 3라운드 16번 홀(파4·275야드)에서 5번 우드로 한 티샷이 그린 바로 밖에 떨어졌고 왼쪽으로 내리막을 타더니 홀인원이 됐다. 파3홀에서도 해본 적이 없는 홀인원을 파4홀에서 한 것이다.

누나의 뒤를 따라 동생 이민우도 탄탄한 실력을 키운 끝에 ‘꿈의 무대’ 미국PGA투어까지 입성하게 됐다. 특히 이민지의 이번 우승에 한 주 앞서 이민우는 아시안투어 SJM 마카오오픈에서 최종합계 30언더파 254타의 맹타를 휘둘러 우승했다. 자신의 아시안 투어 첫 우승을 장식하며 세계 랭킹의 개인 최고 기록인 43위까지 끌어올렸다.

호주 언론은 남매의 ‘더블(2관왕) 합작’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남매 골프의 동반 활약은 드문 일로 꼽힌다. 렉시 톰프슨과 니콜라스 톰프슨 정도라는 게 호주 언론의 보도.

이민우는 이미 DP월드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새로운 강자로 주목받았다. 이민지는 동생의 우승 소식에 대해 “정말 기뻤다. 내게도 어느 정도는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다. 동생이 출전하면 늘 눈여겨보고 있다. 절대 직접 이야기하진 못하겠지만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늘 자랑스럽다. 함께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 좋다”며 자랑스러움을 표시했다.


호주 서부 퍼스에 살던 이민지는 주니어 시절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연습을 빼놓지 않았으며 이틀에 한번 체육관에서 근력 훈련에 매달리기도 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이민지는 2022년 여자 골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US여자오픈 제패 등으로 730만 달러(약 99억 원)를 벌어들여 여자골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리디아 고로 690만 달러였다. 


한국 이름을 쓰는 이민지는 메인스폰서인 하나금융그룹을 비롯해 의류는 코오롱FnC의 골프웨어 브랜드인 '왁(WAAC)'을 입는다. 삼겹살 등 한국 음식을 즐겨 먹으며 한국 드라마와 K-팝에 심취해 있다. LPGA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김효주가 우승했을 때 이민지가 통역을 자처한 적도 있다. 이민지가 한국에서 우승을 합작할 때 전담캐디는 같은 호주인인 브래드 피처였다. 피처는 박인비와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추며 정상을 질주했던 도우미. 박인비가 임신과 출산으로 필드를 떠나있으면서 새롭게 이민지와 인연을 맺었다. 이민지는 “브래드는 비교적 최근인 6,7월에 제 캐디가 됐지만 둘 다 호주 사람이라 통하는 것도 많고 잘 맞습니다. 그와 함께 우승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두 살 터울인 이민지 민우 남매의 성공 스토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골프 유망주에게도 귀감이 될만한 사례다.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일찍부터 주위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이민지는 15세 때 이미 현재 메인스폰서의 하나금융그룹의 후원으로 안정적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당시 하나금융그룹 스포츠마케팅팀장이던 박 폴 AGLF 사무총장은 2014년 국가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대회에 당시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과 후원사 자격으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때 아마추어 신분이지만 호주 대표로 출전한 이민지의 경기장면을 처음 본 뒤 후원 계약에 이르렀다. 박 폴 사무총장은 “이젠 말할 수 있다. 당시 어린 이민지를 후원하는데 반대 의견도 심했다. 하지만 김정태 회장님이 후원을 흔쾌히 결정하시면서 성사가 됐다. 그 결실을 본 것 같아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이민우 역시 한때 하나카드에서 서브스폰서를 맡았다.

호주 골프를 주관하는 단체인 ‘골프 오스트레일리아’도 주니어 시절부터 ‘이씨 남매’에 대한 체계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민지는 호주대표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나선 데 이어 2020 도쿄올림픽에도 출전했다. 이민지는 내년 파리 올림픽에 3회 연속 출전이 유력하며 강력한 메달 후보로도 꼽힌다. 이민우 역시 호주 대표를 노리고 있다.

이민지는 “은퇴 후 어떤 역할로든 LPGA투어에 기여하고 투어를 발전시키고 싶다. 코스에서나 TV에서나 롤모델로서 또는 주니어 육성을 하는 역할이든 LPGA, 여성골프. 주니어 선수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이민지. 이젠 누군가 꿈도 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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